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2가 산2-14.T.02-810-3039.
(70년대 해병대사령부가있었던 후암동).
지하철4호선.숙대입구하차후 #3번출구.용산고 방향
해병대중앙기념관은 여러모로 독특한 역사관이다.
모름지기 군 역사관이라면 역사관에서 주로 다루는 부대 인근에 자리 잡고 있게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전출입 장병 등 부대를 오가는 장병들은 물론 부대를 찾는 손님들이라면 필수적으로 역사관에 들르게 된다.
하지만 해병대중앙기념관은 다르다. 위치부터 해병대와는 전혀 상관없는 기관인 방위사업청(옛 국방부 조달본부) 부지 내에 따로 둥지를 틀고 있다.
해병대 장병들 중에는 이 기념관 존재를 모르는 이들도 상당수다. 오히려 예비역들에게 더 유명하다.
때문에 매년 5000여 명의 관람객이 이곳을 찾는데 상당수가 예비역이다.
이처럼 일면 기이한 기념관의 존재 이면에는 해병대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내부 전시물보다 건립된 배경이 더 흥미로운 기념관, 존재 자체가 의미있는 기념관인 셈이다.
기념관은 1974년 9월 30일 완공, 75년 개관했다. 그런데 해병대사령부는 그 이전인 73년 해체되고 말았다.
모군이 해체된 후에야 기념관이 건립된 사연은 이렇다.
제3공화국 당시 우리나라 근대화에 한몫을 담당했던 해병대는 제4공화국으로 들어서 해체의 길로 들어선다.
해병대를 중용했지만 결국 해병대가 해체될 무렵 군 통수권자였던 박 정희 대통령은 해병대 역사와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해병대중앙기념관 건립을 지시했다.
위치는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으로 해병대사령부가 55년부터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해병대 입장에서 보면 기념관이 방위사업청 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방위사업청이 옛 해병대사령부 부지에 들어선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런 독특한 배경 덕분에 기념관 건립 과정도 매우 이례적이다. 일반적인 부대 역사관은 부족한 예산과 시간을 쪼개 어렵사리 건립된다.
하지만 기념관은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터 파기를 시작한 만큼 설립 규모부터 다르다.
기념관을 설립할 무렵 4만6000여 평이었던 전체 해병대사령관 부지는 용산구 용산동 2번지였지만 대통령 지시로 기념관 부지 1046평만 2-14번지로 별도 지정됐다.
대통령이 건립 비용으로 2000만 원을 하사한 데다 해병대의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또 2400만 원을 보탰다.
서울시내 대지 40평, 건평 20평의 주택이 100만 원이었던 70년대 땅값을 제외하고 건축비만 4400만 원을 들여 지은 덕분에 요즈음 건물과 비교해도 구조나 견고성 면에서 손색이 없다.
해병대사령부가 있던 자리에 지어진 기념관인만큼 전시 내용물은 해병대사령부 역사관의 축소판이다.
203평의 전시 공간에 해병대의 역사부터 각 부대 소개, 참전 기록 등을 담은 1600여 점의 군사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건립 당시 보유했던 전시물들을 해병대사령부 역사관 건립 때 상당 부분 지원하기도 했다.
특히 박대통령의 친필 등 현대사의 굴곡이 고스란히 담긴 전시물도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해병대의 해체로 개관하자마자 침체의 길을 걷기 시작한 기념관은 최근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건립된 이후 끊임없이 이전 논의가 이뤄졌지만 해병대 측은 초지일관 “다른 곳에 갈 바에야 없애는 것이 낫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곳은 해병대가 융성하다 해체당하는 쓰라린 기억을 지닌 곳인 만큼 해병대인들의 정신적 도장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하는 대신 리모델링을 통해 옛 해병대사령부가 있던 이곳을 해병대인들의 정신적 고향으로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사령부가 옮겨간 자리에 남은 해병대중앙기념관은 이곳에서 해병대 제2의 전성기를 꿈꾸며 홀로서기를 모색하고 있다.
"누구나 찾는 명소로 만들 계획"-해병대중앙기념관 박경업 관장
“성공한 전투, 성공한 역사만이 우리가 간직해야 할 역사는 아닙니다.
해병대중앙기념관은 쓰라린 기억을 상기함으로써 해병대만의 정신세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해병대중앙기념관장 박경업(47·사진) 군무사무관은 해병대중앙기념관의 존재 의미를 말하면서 마사다 요새에서 장교 임관식을 하는 이스라엘 얘기를 꺼냈다. “마사다 요새는 유대 민족이 로마에 패해 마침내 국가가 패망하는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대승의 현장도 아니고 볼 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지만 이스라엘은 그곳에서 임관식을 합니다. 그날을 잊지 말자는 의미지요.”
기념관을 해병대의 정신적 도장으로 삼겠다는 박관장은 해군대학에서 전쟁사를 가르치다 2002년 해병대소령으로 전역한 후 이곳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기념관을 둘러싼 철조망을 걷어 내는 일부터 했다.
“기념관이 건립되자마자 해병대가 해체되면서 1980~90년대는 재정 지원이 거의 없어 침체일로를 걸었습니다.
처음 왔을 때 철조망과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철문이 기념관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노획 병기를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 철조망을 친 이유인데 관람객들을 맞겠다는 의지가 거의 없는 건물처럼 보였지요.”
다 막아놨던 배수로를 뚫는 작업부터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해 세월의 때를 고스란히 뒤집어 쓴 채 전시돼 있는 군사문화재들을 손질하는 것도 박관장의 몫이었다.
요즈음 추세와 다르게 일일이 손으로 써서 붙인 부대 연혁과 소개 등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새롭게 제작해 붙이고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 기념관 내부를 개방감 있게 구성해 한결 보기 좋은 공간으로 꾸미는 데도 공을 들였다.
“해병대 초기 역사가 묻어나는 기념관을 해병대 장병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러야 할 명소로 만들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 사령부에 신임 장교 등 장병들이 이곳을 꼭 견학할 수 있도록 권장해 달라고 건의했습니다. 이곳은 해병대인이라면 잊어서는 안 될 역사를 간직한 곳이니까요.”
2006.07.20. 글 = 김가영kky71@dema.mil.kr
◎ 해병대 중앙기념관 오시는 법
주 소 : (140-841) 서울시 용산구 용산동2가 산2-14
전화번호 : 02-810-3039
지 하 철 : 4호선 숙대입구역에 하차 3번출구로 나오셔서 , 용산고등학교 방면으로 약 400미터 정도 똑바로 오시면 용산고등학교 앞 사거리에 도착하십니다. 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약 200미터 정도 계속 진행하시면 해병대 중앙기념관이 있습니다.
버 스 편 : 605번, 108번, 15번 용산고등학교 앞에서 내리십시요.
주변건물 : 용산고등학교, 조달본부 정문 옆 해병대 중앙기념관
개방시간 : 평일 08:00 ~ 16:30 (공휴일, 토요일, 일요일은 개방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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